무성했던 잎들을 보내 주어야 할 때

prologue 2026년 11월호 무성했던 잎들을 보내 주어야 할 때 글 서진아

한여름의 짙은 초록을 자랑하던 잎들이 하나둘 물들어 가는 계절입니다. 붉고 노랗게 변해 가는 나무의 마지막 빛깔을 보려고 사람들이 숲과 산을 찾아 떠납니다. 아름다움에 취해 탄성을 자아내는 사람들은 알까요? 잎이 물드는 것은 곧 떨어질 준비를 하는 것임을. 다가올 겨울을 견디기 위해 나무는 훌훌히 잎을 떨구고, 그 자리에 다음 봄을 위해 눈이 맺힐 자리를 내어 줍니다. 이 계절, 잎을 떨구는 일이 제 생명의 리듬을 잃지 않는 것임을 나무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나무를 통해 신앙의 계절을 배웁니다. 기도가 술술 흘러나오고 감사할 일이 넘치는 날이 있는가 하면, 애써 붙든 것들이 하나둘 손에서 빠져나가고 하나님마저 멀게 느껴지는 날도 있습니다. 우리는 풍성한 계절에만 은혜를 헤아리고, 무언가 잃어 가는 시간에는 신앙마저 시들고 있다고 여기지는 않는지요. 하지만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 듯한 땅속에서도 생명은 다음 계절을 준비하듯 상실의 자리에서도 감사는 자랍니다. 신앙의 깊이는 언제나 뜨겁고 충만한 상태를 유지하는 데 있지 않을 것입니다. 때로는 멈추고, 내려놓고, 보이지 않는 뿌리로 하나님을 붙드는 시간까지도 믿음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데 있을 것입니다.

 

이번 달 「빛과소금」은 한 해의 끝자락에서 우리의 신앙이 어떤 리듬으로 이어지고 있는지 헤아려 보려 합니다. 무엇을 더 이루고 채울 것인지 묻기 전에, 무엇을 감사하며 무엇을 내려놓아야 할지, 누구를 기다리며 오늘 우리의 자리를 비워 두어야 할지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나무는 잎을 내려놓았다고 생명을 잃은 것이 아니며, 우리의 믿음도 잠잠한 계절을 지난다고 멈추는 것은 아닙니다. 올해의 마지막 페이지를 서둘러 넘기기보다, 지금 내 삶에 주어진 계절을 천천히 살아 내기를 바랍니다. 보이지 않는 뿌리에서 다음 봄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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